2017.09.19. 쿠키뉴스. ‘모든’ 감정 쥐어짜 환자 돌보라니 송옥순 “보건의료노동자 감정노동 대안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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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8-04-25 15:36 조회 2,35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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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민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ㅂ씨는 최근 사직을 고려 중이다. 임신한 그는 기존의 업무 강도에 몸이 붓고 쉽게 피로해 ‘정상적인’ 3교대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3교대도 근무도 힘들지만, 턱없이 짧은 식사 시간도 ㅂ씨에게는 여간 곤욕이 아니다. 30분 미만의 짧은 식사를 마치고 나면 소화불량과 입덧마저 심해지기 때문. 그렇다고 소화제를 복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ㅂ씨에게 휴직 신청도 녹록치 않다. 이미 병동 간호사 중 한 명이 출산휴직 중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약사, 영양사, 사무행정·원무, 기능 및 단순노무…. 이상 열거한 이들은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인력이다. 굳이 장시간 고강도의 업무 환경을 차치하더라도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바로 ‘감정노동’이다.
실제 25년차 간호사인 한미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은 “25년차 간호사로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에게 감정노동은 후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면서 “감정노동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송옥주 의원(더불어민주당)도 “환자의 안정과 의료서비스의 질과도 직결돼 있다.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이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면서 “지난해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서 인력 부족, 건강 악화, 직장내 폭언 및 폭행에 신음하고 있었다”고 꼬집는다. 송 의원은 “휴게시설이 설치된 곳도 열악하고 식사시간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노동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은 늦었지만 필요하며,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열악한 노동 환경
그렇다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의 감정노동 상태는 어떨까? 이를 위해선 고용 및 노동환경부터 짚어봐야 한다. 사회건강연구소가 올해 6월 19일부터 7월 7일까지의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1550부의 설문을 분석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의 감정노동 실태조사 분석’에는 이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공선영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보건의료 산업 종사자들이 “법정 노동시간인 하루 8시간과 주5일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응답자 중 40.5%(575명)은 근로계약서의 작성 및 교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 중 11.1%는 작성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가량(46.4%)이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의 노동시간을 규정을 초과하고 있다. 특히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는 25.4%에 달했다. 25.1%는 주5일을 초과해 출근하고 있었다(표).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5.2%(378명)에 불과했으며, 휴가가 없는 경우도 2.0%(30명)이었다.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한 경우는 전체의 15.9%(230명)였으며, 병가 자체가 없는 경우도 7.0%(102명)에 달했다. 참고로 지난해 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9.50일이며, 병가 사용일수 평균은 1.65일이었다.
감정노동과 관련한 예방 및 치유 교육은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교육 자체가 없거나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비율은 71.4%였다. 감정노동 치유프로그램 자체가 아예 없거나 받아보지 못한 비율은 91.1%에 달했다.
각 요인별 감정노동 평가수준을 보면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 남성보다 여성이 감정노동이 더 많이 노출되고 있었다. 5개 요인은 ▶감정조절의 요구 및 규제 ▶환자 응대의 과부하 및 갈등 ▶감정부조화 및 손상 ▶조직의 감시 및 모니터링 ▶조직의지지 및 보호체계 등이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감정조절의 요구 및 규제 항목에서 65.5%로 가장 높았다. 즉, 업무 과정에서 실제 감정을 숨기고 억압하는 등 감정조절에 과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조직의지지 및 보호체계 항목에서는 여성의 위험집단 비율이 64.6%로 가장 높았다. 감정노동뿐만아니라 조직의 감시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직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감정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 “성추행하는 환자도 환자라서…”
“의식이 혼돈스럽다면서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 옷을 벗고 다녀도 환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 감안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간호사)
보건의료산업의 특성상 주된 고객은 환자와 보호자다. 이들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감정조절을 강요받고 있었다. “환자를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상시적 감정노동과 폭력, 폭언을 참고 있었다.
“항상 웃으면서 일할 수 없다. 아픈 환자들에게 웃으면 비웃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스타일이 다른 환자들을 맞추는 게 힘들다. 친절하게 대하고자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물었는데 ‘아파서 왔는데 왜 실실 쪼개냐?’고 되묻더라.”(원무행정직 노동자)
언어폭력은 심각한 실정이다.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폭언뿐만 아니라 협박, 스토킹도 보고된다.
“저희들(간호사들)과 언쟁이 있으면 ‘너 아침에 몇 시에 퇴근하느냐, 뒤에서 칼로 찌르겠다’는 사람이나 돌 같은 것으로 머리를 때리려는 사람들도 많다.”(원무행정직 노동자)
“간호사가 예쁘거나 마음에 안 들면 환자가 이브닝 시간 끝날 때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간호사)
상당수 조직(병원)은 ‘무대응’과 ‘노동자에게 잘못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감정노동 보호제도의 부재는커녕 보호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상당수는 폭언 및 폭력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참고 넘길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진술했다.
“고충처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과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결과는 재발 방지는 하겠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실제 재발방지책은 없었다. 말만 한 것이다.”(방사선사)
이렇듯 보건의료산업 종사자의 감정노동 문제는 폭발 일보 직전이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감정노동 문제는 술 한 잔 마시면서 가볍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과로와 스트레스, 우울증, 심하면 자살로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감정노동이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존중받고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한다”며 실질적인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